양자 산업의 서막 :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고 | 한상욱 단장(한국과학기술연구원 양자활용연구거점사업단)
다가오는 양자 산업 시대
20년 전만 해도 대표적인 양자응용 기술인 양자 컴퓨팅은 실현 가능한 기술인지, 아니면 일부 물리학자들만의 흥미로운 연구 주제에 불과한지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양자 컴퓨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회의론이 학계와 산업계에서 공공연히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양자 컴퓨팅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2025년 1월 CES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양자 컴퓨팅은 아직 멀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불과 두 달 뒤 이를 철회하고 오히려 자사의 양자 컴퓨팅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한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양자기술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산업에 적용할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글로벌 IT 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인수합병(M&A)과 전략적 제휴가 속속 발표되고 있으며, 기술 선진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 하며, 국가 주도의 육성 정책을 산업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 하는 조짐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5년은 양자기술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 동안 잠잠했던 양자기술이 왜 지금에서 산업화 논의가 일어나는 것일까? 지난 100여 년간 양자역학은 주로 기초 연구의 대상이었다. 양자는 주로 극한의 미시세계에서 다루어 지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 세계에서 극히 일부의 최첨단 연구실을 갖춘 곳에서만 양자 신호를 생성·제어·측정할 수 있었다. 최근 반도체 공정, 초정밀 레이저, RF(Radio Frequency) 기술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비약적인 발전 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양자 신호를 생성하고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과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는 곧 양자기술이 ‘실험실의 과학’을 넘어 ‘산업의 기술’로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의 양자기술 투자 전략
양자기술은 오랫동안 정부 주도의 연구 프로젝트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최근에는 민간 기업과 벤처 투자까지 결합된 다층적 생태계로 발전하고 있다. 국가별 투자 전략을 살펴보면, 각국의 기술 경쟁력과 산업 전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1. 미국: 정부 중심에서 기업 주도로
미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가 안보와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양자기술 투자를 이끌었다. 2018년에는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법(NQI Act)」을 제정해 양자 컴퓨팅, 통신, 센싱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 연구개발(R&D)을 가동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IBM,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이 직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며 투자 및 기술 개발을 주도,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 양자 서비스(IBM Quantum, AWS Braket 등)가 대표적인 사례다.
2. 중국: 일사불란한 중앙정부 주도의 투자
중국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조정 아래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허페이(合肥)에 설립한 국가 양자정보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양자 통신 위성 ‘묵자호’를 발사하고, 전국을 잇는 양자 암호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 기술 패권의 확보를 목표로 하며, 정부가 모든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체계가 특징이다.
3. 유럽: 공동연구와 국가별 집중 투자의 병행
유럽연합(EU)은 일찍부터 양자 플래그십(Quantum Flagship)을 통해 공동 기초 연구를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투자가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독일은 20억 유로 이상을 양자 컴퓨팅 인프라와 기업 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4. 일본·호주 및 신흥국
일본은 도쿄대학교와 이화학연구소(RIKEN)를 중심으로 초전도 양자 컴퓨터와 양자 소프트웨어 인력을 집중 양성 중이다. 도요타, 후지쯔 등 기업들도 자사 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 시뮬레이션 연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호주는 시드니대학교와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 등을 기반으로 양자점 기반 양자 컴퓨터 개발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인도·싱가포르 등도 ‘늦지 않게 합류’ 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5. 대한민국: 2019년부터 본격 투자
다소 늦게 투자에 나선 우리나라는 2019년 양자 컴퓨팅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원천기술 개발,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왔다. 2025년에는 예타 수준 대형 사업인 ‘양자 플래그십 사업’을 통해 핵심 기술을 빠르게 확보할 계획이 다. 산업화·상용화로 이어질 후속 단계의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자기술 시장 전망과 전략적 가치
양자기술은 특정 산업군에 국한되지 않는 ‘공통 기반 기술 (General-Purpose Technology)’로, 인공지능(AI)과 매우 유사하다. AI가 금융·의료·제조·국방 등 모든 산업에 파급력을 미치는 것처럼 양자기술도 광범위한 분야에서 변화를 촉발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양자기술이 단순히 AI와 나란히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AI 자체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기술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양자 머신러닝(Quantum Machine Learning)은 AI 모델의 학습 속도를 높이고, 기존에는 풀기 어려웠던 복잡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양자기술은 자체 시장 규모보다 파급 효과가 훨씬 더 큰 기술로 평가된다. 글로벌 컨설팅사들은 양자 컴퓨팅 시장이 2030년대 초반까지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실제 파급효과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화학·제약 산업에서의 신약 개발 기간 단축, 금융 산업에서의 위험 모델링 혁신 등 산업 전반에서 간접적 경제 효과가 직접 시장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양자기술은 국가 전략기술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대표적으로 양자 키 분배(Quantum Key Distribution, QKD)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며, 군사 통신망이나 위성 통신망의 보안을 혁신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양자 센서는 잠수함 탐지, 정밀 항법 등 국방 전략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국가 안보 차원의 전략 자산으로 양자기술 개발에 접근하고 있는 이유다. 양자기술은 이들 국가에겐 새로운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 AI, 데이터센터, 보안 산업 등 자사의 핵심 비즈니스 전체를 확장할 플랫폼이다. 결국, 양자기술 시장의 전망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앞으로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할 핵심축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
양자 산업화는 연구성과를 넘어 실제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공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는 연구자뿐 아니라 기업, 투자자, 정책 입안자 모두가 참여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ICT 강국이다. 여기에 양자기술을 결합한다면 글로벌 산업화를 선도할 잠재력이 크다. 특히, 중국이 기술·산업 공급망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현 상황은 우리에게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원천기술 확보도 필수적이다. 양자 원천기술은 100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다. 이를 따라가는 것은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양자가 산업의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새롭게 요구되는 원천기술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아 우리에게도 도전할 기회가 열려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학·연·관의 유기적 협력이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계가 실질적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며, 정부가 정책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 대기업·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테스트 베드, 공동 연구센터, 실증사업 등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양자 산업 시대는 이미 성큼 다가왔다. 지금 우리가 어떤 전략을 세우고, 어떤 투자를 집행하며, 어떤 인재를 길러내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은 선두주자가 될 수도, 뒤늦게 쫓아 가는 추격자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 바로, 준비의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