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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도전과 성장 스토리

도전과 성장 스토리

DATA로 세상을 바꾸는 KISTI

PART 4. 국가 슈퍼컴퓨팅사업 주관

01
정부 행정과
금융·산업체의
전산화를 이끌다

컴퓨터의 도입과 행정·금융·산업체 전산화

슈퍼컴퓨팅센터의 전신,
KIST 전산실이 도입한
CDC 3300
슈퍼컴퓨팅센터의 역사는 1967년 6월 발족한 KIST의 전산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KIST 전산실은 1984년 11월 KA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센터로 개편된 뒤 1988년부터 슈퍼컴퓨터를 도입, 가동하면서 국가 컴퓨팅 자원의 공동 활동센터이자 국가 기간전산망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시스템공학연구소(SERI)로 개편되고 나서는 슈퍼컴퓨터의 활용능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연구전산망 구축사업을 선도하여 우리나라가 2000년대에 정보산업 분야의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공헌했다.

그중에서도 KIST 전산실이 1969년 1월에 도입한 CDC 3300은 국내 컴퓨터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비록 기억 용량이 32KW(Kilo Word)에 그쳤지만, 당시로서는 세계 최신의 기종이었으며 국내에 도입된 컴퓨터 가운데 최대 용량이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컴퓨터를 도입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도 까다로웠던 시기에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선정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후 CDC 3300 기종은 1970년 6월 메모리를 96KW로 확장하고 MSOS였던 운영체제도 MASTER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국내 최초로 개통된 데이터통신망을 이용, 홍릉의 CDC 3300 시스템과 광화문 정부청사의 CDC 200UT를 2400bps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원격지에서 컴퓨터를 공유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를 시작으로 KIST 전산실은 정부 부처의 전산화와 함께 교육기관에 원격지 온라인 컴퓨터교육이 가능한 통신망을 시범적으로 구축하고 1976년부터 전국 규모의 개방형 온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다.

1969년 1월, 국내에 CDC 3300가 도입된 지 1년여 만에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들이 잇달아 개발됨에 따라 컴퓨터의 활용성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KIST 전산실은 1970년 6월 메모리 용량을 3배로 확장했으며 이듬해 11월에는 2호기 컴퓨터로 최신 기종인 CYBER 72-14를 대여했다. 이 기종은 최신의 고성능 컴퓨터로서 복수의 프로세서와 Time sharing 기술이 적용된 대규모 과학계산 처리용 시스템이었다. CYBER 시리즈는 이후 계속해서 새로운 기종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정보자원 인프라를 공동 활용하는 메인 서버의 역할을 했다.

한편, KIST 전산실은 1973년 8월 전자계산부 승격을 계기로 하부에 전산연구개발실과 전산운영실을 설치하여 업무를 한층 전문화했다. 또 CYBER 73-14를 도입한 후에는 터미널 보급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전산운영실에 터미널팀을 개설했다. 터미널팀은 터미널 설치뿐만 아니라 통신회선과 모뎀을 설치 운영하는 등 CDK CE(Custom Engineer)와 함께 우리나라 데이터 전산망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 결과 1976년 서울~광주 간 4,800bps 통신을 개통한 데 이어 1978년에는 서울~부산, 서울~대전 간에 각각 9,600bps 통신을 연결하여 고속통신 개통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서울·부산·광주·울산 등지에 대화형 단말장치를 연결함으로써 전국적인 전산망 구축을 완료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습득한 컴퓨터의 공동 활용 기반 기술과 노하우는 이후 정부의 5대 기간 전산망 사업과 초고속 정보통신망 기반사업의 모태가 되었다.
2호기 컴퓨터
CYBER 72-14 도입과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컴퓨터를
정부 부처의 행정업무에
활용하다
컴퓨터의 도입은 정부 부처의 행정업무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전화요금 고지서를 일일이 수기로 작성하여 발부했기 때문에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화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수기 처리로 인한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에 KIST 전산실은 1970년 11월부터 1년간 체신부와 공동으로 대규모 데이터 처리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71년 10월 전화요금 고지서 전산화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 후 KIST 전산실은 국내 최초로 광학문자판독(OCR) 시스템을 도입하고 처리기술을 개발하여 대학입학 예비고사 채점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973년부터는 서울시 상수도 요금 고지서 발급업무를 시작으로 전매청 업무, 중·고등학교 학교 배정, 제조업 생산관리, 병무청 업무, 기상통계, 병원업무 관리 등 다수의 공공 행정업무와 금융기관 및 산업체의 관리업무 전산화를 주도했다. 이렇듯 정부 부처의 행정업무를 크게 간소화함으로써 국가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고 정보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KIST 전자계산부는 1976년 2월 전자계산조직연구부로 개편되었다가 1977년 3월에 KIST 전산개발센터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수탁연구과제가 갈수록 증가하고 사용자의 요구가 점차 다양화·대형화되어 컴퓨터 용량과 기능이 한계에 도달하자 전산설비의 증설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KIST 전산개발센터는 1979년 1월, 주로 과학계산에 적합한 Cyber 기종과 차별화된 범용 시스템인 IBM 3032 기종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제3세대 컴퓨터로서 국내 최초로 도입된 최신 기종이었다. 이후 IBM 3032 기종은 기존의 CYBER 시리즈와 더불어 1980년대 중반까지 의료보험 전산화를 비롯해서 ’88 서울올림픽 전산화의 발판이 된 ’83 인천전국체전 전산화 작업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 주력 기종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KIST는 1980년 12월 이공계 출연연구기관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한국과학원(KAIS)과 통합,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KIST 전산개발센터도 KAIST 전산개발센터로 변경되었다가 1982년 2월에 KAIST 부설 전산개발센터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1984년 11월 KAIST 부설 시스템공학센터(SERI)로 재출발하면서 조직과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다.

KAIST 부설 전산개발센터 시기에 수행한 과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금융실명제 시스템 개발이었다. 6개월 만에 개발을 완료한 이 시스템은 이후 국세청의 징세업무에 활용되었다. 국세청은 이 시스템을 통해 1983년에 3,700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징수했으며 1984년부터 5년간 은닉 세수 2조 5,600억 원을 발굴할 수 있었다.
3세대 컴퓨터 도입과
KAIST 부설
시스템공학센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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