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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성장 스토리

DATA로 세상을 바꾸는 KISTI

PART 2. 과학기술정보제공 서비스

01
수요자 맞춤
정보제공 서비스의
새 장을 열다

문헌정보 서비스 개시와 수요 개발 노력

백지 상태에서 뗀
정보제공 서비스의
첫걸음
1962년 출범 당시 정보센터(KORSTIC)의 최우선 과제는 국내 과학기술자들의 정보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자료를 수집하여 지속적이고 신속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에 KORSTIC은 출범과 동시에 기초자료 조사와 관련자료 수집에 착수했다. 물론 축적된 정보 기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소규모 인력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외국 과학정보기관의 기능조사를 시작으로 국내 보유 과학기술 정기간행물 조사, 국내 자연과학계 석·박사 명단 및 논문집 조사, 한국과학자 업적조사 등 기초조사를 추진했다.

KORSTIC은 자료수집 시에 확보된 예산에 맞추어 기초과학부문과 특허 및 원자력 부문, 기타 부문으로 구분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어 전국의 대학과 주요 연구기관 등에 의뢰하여 해외 정기간행물 소장목록을 입수했다. 첫 자료구입 발주는 1962년 5월 일본의 특허공보 및 실용신안공보 등 619종에 대해 이루어졌다. 이후 미주와 구미지역에 대해서도 발주를 추진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본을 제외한 해외 정기간행물의 본격적인 입수는 1963년 이후 해외 정보기관 및 도서관들과 자료를 교환하고 수증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나갔다.

KORSTIC은 기초조사 및 자료수집과 더불어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수집된 1차 정보자료의 소재를 알리기 위한 문헌정보 및 특허정보 처리 업무도 추진했다.

우선 입수한 자료 중에서 유용한 정보를 선별했다. 그리고 이용자들의 편리를 위해 국제표준 분류법에 따라 주제 분류 코드를 부여하고 정보를 축약하여 색인어로 표현, 서지사항을 표준화된 양식에 따라 처리한 뒤 2차 정보자료로 가공해서 정기간행물로 발행했다. 이렇게 해서 1962년에 창간된 간행물이 바로 『과학기술문헌목록집』이었다. 이 목록집은 비록 일본 과학기술정보센터에서 입수한 자료의 목차를 번역한 것에 불과했지만, 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가운데 국내 최초로 간행된 책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이후 『과학기술문헌목록집』은 좀 더 세분화된 형태로 발전해갔다.

1963년에는 종전에 과학·의학·농학·공학·원자력 등 5개로 대분류해서 한 권에 수록하던 체계를 변경, 2개의 주제 분야로 대별한 뒤 수학·물리·화학·공학편과 생물·의약학·농학편으로 각각 분책하여 간행했다. KORSTIC은 1964년에 간행물의 제호를 『과학기술문헌목록집』로 변경한 후에도 세분화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그 결과 1965년에 3분책, 1969년에는 4분책, 그리고 1970년에는 수학·물리편, 전기·전자편, 기계·금속·토목·건축편, 화학·화공편, 생물·농학·약학편 등 5분책으로 발간했다.

또한, 수집된 1차 정보자료의 소재를 알리기 위한 특허정보 처리업무도 추진하여 1963년에 특허와 관련된 국내 최초 간행물인 『외국특허목록집』을 창간했다. 이 목록집 역시 1963년도 일본의 특허목록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에 그쳤지만, 당시 국내 유일의 특허검색 및 조사를 수행하던 정보처리부가 담당했던 만큼 우리나라 특허업무의 효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64년 『외국특허속보』로 개칭된 뒤에는 일본과 미국 특허를 함께 수록하기 시작했다. 또한 1968년에는 국내 최초로 각 기관이 소장한 과학기술 분야 학술지를 소개하는 『외국과학기술잡지 종합목록』을 발행하기도 했다.
문헌정보·특허정보 처리
본격화와 간행물 발간

정보제공 서비스 개시와
홍보 기관지 창간
KORSTIC의 정보제공 서비스는 창립 이듬해인 1963년 3월, 자료의 원문을 제공하는 문헌복사 서비스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확산전자식 서적복사기를 이용, 감광지를 자료에 밀착시켜 실물대로 복사했기 때문에 업무에 비효율이 따랐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이에 KORSTIC은 1963년 9월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필름 카메라와 확대기 및 현상기를 도입, 카메라로 촬영한 뒤 인화한 뒤에 복사물을 제작하여 제공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 문제도 크게 개선했다. 또 1965년부터는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정보조사 서비스도 개시했다. 정보조사 서비스는 첫해 13개 주제에 그쳤으나 1970년에는 108개 주제로 확대되었다.

한편, KORSTIC은 정보서비스 활동을 본격화하기 전인 1963년 3월에 홍보용 기관지 『KORSTIC』을 창간했다. 『KORSTIC』은 기관의 업무와 기능은 물론 주요 사업 분야를 널리 알려 수요를 창출한다는 목적에 걸맞게 과학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에까지 과학기술정보활동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간행물은 1966년 12월 통권 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가 1971년부터 『정보관리연구』라는 제호로 복간되었다. 이후 『정보관리연구』는 기관의 홍보뿐만 아니라 정보관리 기술을 국내에 보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KORSTIC이 1963년부터 시작한 문헌조사 서비스는 수요자의 요청에 따라 특정 주제와 관련된 문헌 및 특허자료를 과거로부터 소급하여 조사·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비록 축적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전문부서도 없이 운영하다 보니 서비스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맞춤정보 서비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어 1969년 홍릉 청사 신축을 계기로 KORSTIC이 소장한 자료를 직접 열람할 수 있는 자료열람 서비스도 개시했다.

그 후 1970년대 들어와 국내 기업들 사이에 R&D가 활성화되자 KORSTIC은 1970년 2월 조사서비스를 전담하는 기술조사과를 신설했다. 기술조사과는 이듬해 5월 조사검색부로 승격된 뒤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KORSTIC에 등록된 번역 협력자들에게 의뢰하여 번역 서비스도 시행했다. 국내에서 번역이 가능한 자료는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번역이 불가능한 언어는 외국 정보기관을 통해 의뢰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여 서비스했다.

초창기 KORSTIC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유로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요금후불제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요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단법인 시절 요금선납제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요금의 정산과정이 번거로워 이용자의 불편을 초래했으며 기관 입장에서도 빠르게 증가하는 정보 수요량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이에 KORSTIC은 1968년에 정보 수요자들이 회비금액 한도 내에서 각종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예탁금 제도인 회원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회원을 특별회원, 단체회원, 개인회원 A, B로 구분했다가 1969년부터는 단체회원도 A, B로 다시 구분했다. 이후 이용률 증가에 맞추어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1972년부터 회비를 증액하고 서비스 양도 늘려나갔다. KORSTIC은 회원 제도를 통해 이용자의 편의를 제고하고 사무를 간소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이용 실적도 크게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서비스 수요 개발 노력과
회원제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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